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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분재전시회
글 : 최승우
2024년 11월 전주정원문화센터 야외정원에 조성된 미니포토존
친환경 볏단으로 조성된 꿀벌 친구들 포토존, 사슴 가족 조형물
거친 손길을 이기고 꿋꿋함을 지닌 국화꽃 네가 자랑스럽다
노년의 시간은 더디면서 빠르게 흐르는 자기 모순적 성격을 지닌다. 하루해가 길게 느껴지지만 정작 연말이 되면 화살같이 지나간 시간에 놀란다. 목표 지향적이고 바빴던 젊은 시절의 시간은 세월의 무게가 더해지면 회상과 쉼의 순간으로 변한다. 노년이 되면 차고 넘치는 게 시간이나 오늘 놀고 내일 쉬는 일상이 대부분이다.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는 것이 노년의 중요한 과제이다.
특별한 취미를 갖고 있지 않은 나는 지인의 권유로 전주정원문화센터의 ‘국화 분재 만들기’ 과정에 등록했다. 격주 19회차 교육으로 3월부터 11월 초까지 이어지는 국화 분재는 적잖은 수강료와 긴 시간을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교육에 참여하는 다수는 식물 관련 지식과 경험치가 높은 사람들이었는데, 반해 나는 식물에 대해서 ‘문외한’이다. 새로운 경험에 대한 기대감과 시간을 좀 더 가치 있게 보내고자 ‘국화 분재 만들기’에 동참했다.
2024년 전주정원문화센터 국화분재만들기(19회차 전문가 과정) 포스터와 교육 내용
‘국화 분재 만들기’ 첫 시간 각자 품종을 달리하는 국화 묘목 5그루를 분양받았다. 앞으로 우리가 가꾸고 꽃피어낼 소중한 자원이다. 한 그루도 키워내기 쉽지 않은데 5그루라니 처음부터 부담 백배이다.
두 시간의 국화 분재 교육 중 한 시간은 이론, 이어서 실습을 한다. “여러분! 순을 집으세요.”라는 강사의 이야기에 “순은 무엇이고 어떻게 집으라는 거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강의 중 ‘정부 우세승’이라는 말에 “정부 우세승이 뭐지?”라는 순간에 ‘줄기의 정아와 곁눈이 공존할 때 곁눈보다 정아가 먼저 발육하는 현상’을 ‘정부 우세성’이라며 바로 잡아준다. 도무지 아는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가르치는 선생님의 ‘답답함’과 수강생의 ‘멋모름’이 교집합을 이룬다. 강의 내용을 이해하고 떨어진 자존감을 줍느라 강의 시간 내내 바쁘기에 그지없다. “희생지 세 가지를 남기고 여덟 팔자 수형을 잡으세요.”라는 교육에 따라 여린 가지에 알루미늄 철사를 감고 수형을 잡으려 하나 무리한 힘을 견디지 못한 가지는 고개를 떨군다. 감싸안은 ‘팔 자형’이 아니라 무협 영화 ‘돌아온 외팔이’에 어울리는 모습이다.
시간은 흐르고 수업은 계속된다. 끊임없이 순과 수형을 잡는다. “침엽을 하세요.”라며 또 다른 과제를 준다. “침엽이 대체 뭐지?” 선생님의 답답함과 수강생의 몰이해가 시리즈물로 재현된다. 한편으로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라는 말에 비할 바 아니지만 처음과 달리 국화 분재를 조금씩 알아간다. 수강생 중에는 식물에 대한 축적된 지식과 미적 감각을 바탕으로 멋들어진 직간과 곡간을 연출하기도 한다. 학습 부진아인 나는 여전히 뒤에서 허덕이나 거친 손을 마다하고 나름의 수형을 갖춘 효자 국화와 그냥 내버려두었던 국화 하나는 스스로 짝퉁 백조의 모습으로 변해 실추된 자존심을 살려준다.
여러 차례의 분갈이가 끝나고 17회차에는 기존의 무미건조한 화분이 아닌 멋스러운 화분에 국화를 옮겨심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 있듯이 작고 아담한 화분에 옮겨심은 국화는 이전의 모습과 완전 딴판이었다. 이어지는 이끼 깔기로 화장의 완성이 이루어지고 ‘국화의 변신은 무죄’라는 듯 멋스러움에 수강생 모두는 환호성을 지른다.
언제부턴가 국화에 흰색과 노랑, 그리고 붉은 색의 꽃망울을 맺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꽃을 맺기 위한 선택과 집중의 시간이 찾아왔다. 가지마다 한두 개의 꽃망울을 남기고 나머지는 따야 한다. 사람들의 거친 손과 긴 여름의 무더위를 이겨낸 꽃은 몇몇 꽃망울을 남기고 ‘못다 핀 꽃 송이’로 사라졌다.
2024년 전주정원문화센터 국화분재 & 베란다정원 전시회 포스터
정원 문화를 확산하는 거점 공간인 전주정원문화센터에서는 지난 11월 8일부터 14일까지 일주일간 베란다 정원 만들기, 이끼 테라리움, 수석 작품 등 정원의 다양한 소재를 전시했다. 국화 분재도 같은 기간 동안 수강생의 대표작 1점을 포함해 3점의 국화 분재를 전시하고 대표작 한점에 이름을 붙였다. ‘가을 소리 가을 향기 그리고 그대’, ‘가을 송송’, ‘국화 향에 그리움을 묻는다.’ 등 각양각색이다. 내 국화 명은 ‘거친 손길과 꿋꿋함’이다. 내 거친 손길과 어려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국화 본연의 모습을 지킨 시간을 담은 이름이다.
2024년 국화분재 전시장 (전주정원문화센터 2층)
지난 9개월의 국화 분재 교육은 생소한 경험에서 오는 답답함과 몰이해였다. 지나친 의욕과 욕심으로 여린 가지를 부러뜨리기 일쑤였고, 방치에 가까운 내버려둠으로 제멋대로인 국화의 모습도 보았다. 한편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알아간다는 앎의 기회였고, 어떤 일에 시간과 정성을 다할 때 결과와 관계없이 만족감이 찾아드는 즐거움을 경험했다. 작은 실패와 성공 속에서 ‘욕구의 과불급이 없는 중용’의 지혜를 깨친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을의 끝자락을 국화꽃 향기로 가득 채울 그럴듯한 친구가 생겨 더없이 기쁘다.